직장에서 기대는 실망이 되고, 실망은 단단해진다

하나의 실수가 있었다. 나를 포함해 누구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결국 그 실수의 책임은 가장 아래에 있는 내가 떠안게 되었다. 분노는 직급이 높은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쏟아졌고, 나는 그 밑에서 정신없이 수습하느라 바빴다. 그 순간,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내가 좀 더 꼼꼼했더라면 이런 실수를 피할 수 있었을까. 자책 반, 허탈감 반의 감정이 몰려왔다.

누군가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싸이의 ‘기댈곳’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도 기댈 수 있는 선배가 있었으면 했다. 오징어게임 속 금자(강애심)가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참 불공평해요. 못된 놈들은 나쁜 짓을 해 놓고도 남 탓 하면서 마음 편히 사는디… 착한 사람들은 뭐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다 자기 탓을 하면서…”라고 말하던 장면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 조직엔 그런 사람이 없다. 그 현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조직 안에서 진심을 보이는 순간, 이용당하기 쉽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선 ‘좋은 선배’라고 포장되지만, 결국엔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몇 번이나 그런 순간들을 겪었다. 고객 앞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적도 있었고, 팀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적받은 적도 있었다.

A 씨에게 기대를 걸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위에서 힘들게 질책당하던 A 씨의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꼈던 내가, 지금 돌아보면 순진했던 것 같다. A 씨 역시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방식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그 누구도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오직 B 씨가 말했다. “아무도 너희한테 고생했다고 안 해. 스스로라도 고생했다고 말해야 해.” 물론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감정을 추스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언제까지 혼자서 고생만 해야 하느냐고. 입사 초에는 인격적으로 대해주던 B씨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런 변화는 아랫사람에게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떠나는 건 언제나 그런 대우를 견디기 어려웠던 사람들이다. 남은 나는 ‘평생직장’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대체할 자신도 없고 떠날 용기도 없어 자리에 붙들려 있는 것 같았다. 위에서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우리가 지켜줄게”, “책임은 우리가 질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랫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다 똑같았던 거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C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B 씨 본래 성격, 정말 별로야.”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지만, 반복되는 B 씨의 윽박지름과 무시 속에서 그 말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D 씨. 예전에 철야 작업을 하며 도와준 적이 있다. 나에게 간절하게 부탁해서 밤늦게까지 매달렸고,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마치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 심지어 태도까지 바뀌었다. 간절할 때와 일이 끝난 뒤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그 뒤로 나는 깨달았다. 다음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나도 이제 내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한다. 미 퍼스트.

평소 고마운 E 씨의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현타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 오래 끌지 마.
일시적인 감정은 흘려보내.다니는 동안엔 적당히 책임감 있게.
하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는 해둬야지.
그리고 인정해. 속으로 아무리 말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는 걸.
그냥 빨리 잊고, 쓸데없는 데 에너지 낭비하지 마.
그 말처럼, 나 역시 오늘은 이 감정을 적당히 흘려보내야겠다.
감정이 상했던 만큼, 현실을 직시하게 된 날이었다.